— 태국에 쿠테타가 있었다. 우리의 5공 시절 쿠테타의 모습이 여실히 떠오를 무렵 아래와 같은 글을 읽게 되었다. 그 시절 겉모양만 선거의 모습을 지닌 선거를 통해 정당성을 인정 받고, 전쟁을 방불캐 하는 긴박함과 혼란으로 나라를 평정한 우리나라의 과거와 아래 글에서 보이는 태국. 왠지 모를 숙연함이 느껴진다.

–글 시작 — 현재 태국에 체재 중인 블로거의 글로 부터 발췌.
쿠데타, 우리에게는 한국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자 부끄러운 역사.

제 5공화국 같은 드라마를 통해 한국의 쿠데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한국인.

그러나 태국의 쿠데타는 ‘태국식’으로 이루어 지고 있었다.

19일 저녁 6시 여느때와 다름없이 일을 마치고 UN건물을 나섰다. UN건물 바로 옆에 왕실군대 주둔지가 있는데 그 앞에 다른날과 다르게 초조해 보이는 시민들이 한 무리가 서성이고 있었다.

시내로 이동해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오는 길에 한 태국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방콕에 큰일이 일어난다는 소문이 있으니, 집에 일찍 돌아가라’. 이 때까지 나는 전혀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몰랐다. 사실 얼마전부터 탁신총리의 해외 체류 기간을 이용해서 쿠데타가 일어난다는 루머는 돌았지만 육군 총 사령관인 손티는 ‘정부와 군을 이간질 하려는 루머’라고 단정지어왔었다.

그러나 그 날밤, 방콕에 탱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쿠데타 세력은 신속하게 친 탁신 세력인 부총리와 국방부 장관을 체포하고 탁신총리의 공관을 비롯한 정부 주요 거점을 탱크로 점령했다.

어느순간, 태국 방송이 모두 중단되고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던 CNN마저 차단이 되면서 외국인으로써 불안할 수 밖에 없었다. 전화는 폭주한 통화량때문에 차단이 되었고 모든 태국 국영방송은 일제히 쿠데타를 알리는 글과 함께 왕을 찬양하는 영상을 틀었다. CNN이 끈기고 BBC만을 통해 소식을 접하던 나는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을 키고 외신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AP,로이터 같은 통신사는 일제히 쿠데타를 알렸고 UN총회때문에 뉴욕에 있는 탁신이 선포한 A state of emergency(계엄령)을 타전했다.

탁신의 계엄령에 따르면 모든 군은 이동을 금지하고 군 수장은 국방부 장관에게 가야하는 것이 정상이였지만 탱크는 보란듯이 방콕을 점령하고 있었다. 새벽 3시(태국시간)가 다 되도록 CNN은 돌아오지 않았고 쿠데타의 주도자는 누구이며, 목적은 무엇인지 수많은 의문점을 남기고 밤을 보냈다.




-첫날 밤의 긴박했던 상황을 취재한 태국의 신문들, 탁신의 얼굴이 유난히 씁쓸해보인다.





20일 아침, UN앞에 서있는 탱크들을 보여주는 방송을 보면서 UN빌딩 앞 인것을 확인했다. UN에서는 출근하지 말라는 메세지를 보냈지만 난 태연하게 사진기를 챙기고 사무실 근처로 향했다. UN바로 옆에 있는 왕실군대 주둔지에서 쿠데타 세력의 기자회견이 때마침 있어서 그 주변은 모두 통제되고 길게 늘어선 기자들을 볼 수 있었다.  


-쿠데타 주도세력의 기자회견을 기다리는 태국 및 외신 언론 기자들(왕실군대 주둔지)
   

-기자회견장 주변을 통제하고 있는 태국 군인과 경찰들(쿠데타가 군대와 경찰의 연합으로 이루어졌다)


-쿠데타의 수장인 손티 장군에게 보내는 지지 메세지를 BMW에 스프레이를 이용해 써놓았다. 장미꽃들은 쿠데타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메세지이다. BMW의 신차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처음 도착한 그 곳에서 내가 생각했던 쿠데타가 아니였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태국 국민들은 군인들에게 고생한다는, 지지한다는 의미의 장미와 음료수등을 건네며 쿠데타를 즐기고(?)있었다. 사실 탁신은 하류층과 정치에 관심없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중,상류층에게 비난을 받어왔다. 태국을 경제적으로 안정화 시킨점은 동의하지만 그 과정과 결과에서 많은 부정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더욱이나 얼마전 싱가폴에게 자신의 가족이 소유한 주식을 파는 과정에서 세금문제로 국민들의 큰 분노를 샀다.    



-방콕의 UN건물 앞에 도로가 모두 통제되었다. 평소에는 보기 힘든 군대 차와 군인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평소에 교통체증으로 유명한 유엔 주변 길에 들어선 탱크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본 것은 군사박람회(?)에 온 태국 사람들과 외국인들이였다. 그리고

방콕의 상징이기도 한 교통체증을 도로통제로 막아버린 시원한 거리였다. 평소에는 오토바이와 자동차로 가득찼을 거리를 가로질러 걷는 기분만은 참 상쾌했다.   



-태국만이 할 수 있는 쿠데타 스타일. 대부분의 시민은 탁신이 물러남에 기뻐하며 쿠데타를 일으켜 준 군 수뇌부와 군인들에게 대부분 이런식으로 감사함을 표했다.  




-손에 든 음료수와 장미꽃 그리고 자세히 보면 탄창이 없는 총(실제로 총알 없는 쿠데타였다)으로 표현되어지는 태국의 쿠데타. 포즈를 취해달라는 나의 말에 어색하지만 따라주는 태국 군인   

-탱크에 국민들의 지지의 상징인 장미꽃이 보기 좋게(?) 꽂혀있다.





-분명 심각한 분위기의 쿠데타지만 쿠데타를 지지하는 이에게는 기념적인 날이였다. 사진찍는 태국인들.
-어깨에 두른 노란띠는 왕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표시. 표정이 덜덜덜.



내가 묵고 있는 호텔 직원인 위나(29)는 나에게 이런말을 했다. ‘오늘은 태국에게 희망의 날이다. 탁신이라는 부정부패의 상징이 무너지는 날이다’. 영국 가디언지에서 나온 한 영국인기자는 ‘이번 쿠데타는 국왕의 암묵적인 지지와 국민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라고 말했다.



이처럼 태국의 내부 분위기는 이번 쿠데타를 반기는 분위기다. 심지어 전 국민의 85%가 이번 쿠데타를 지지하고 있다고 하니 더 할말이 있겠는가? 태국 최초 무슬림 장군인 손티 장군은 국민부터 왕까지 지지기반이 큰 사람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태국사람들 입장에서는 이번 쿠데타가 성전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탄창없는, 피가 없는 쿠데타였다고 하더라도 군대라는 권력이 정권을 바꾼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특히나 민주주의에서는 말이다.



폭력은 어떤 수단에서도 정당화 될 수 없기 때문에 이번 쿠데타는 비록 부패정권의 교체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좀 더 생각해 볼 문제가 있는 것이다.



태국에게 있어서 역사적인 현장에 있었던 나였지만 심각하고 엄숙하지 않았다. 쿠데타의 역사가 깊은(?)태국에서 이번 쿠데타는 다른때와 마찬가지로 부패한 정치에 관한 반작용으로 국왕의 승인아래 이루어진 하나의 페이지 전환쯤으로 여겨졌다.



태국 정치의 불안정함에 폭력이라는 수단을 통해서라도 바꾸고 싶었던 탁신의 금권정치가 과연 폭력이라는 수단을 정당화 시킬만큼 심각했을까? 만약 폭력으로 밖에 해결할 수 없었던 구조라면 새삼스레 태국의 민주주의가 서글퍼지는 하루였다.


-이 아이들은 쿠데타가 무언지 알고 있을까? 평화롭다고 하지만 군대가 점령한 방콕을 알기나 한걸까? 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탱크


-이런 큰 사건에 한 개인인 군인은 어떤 존재일까?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있는 군인의 표정이 썩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문득 내가 군대에서 있던 시절이 생각이 나서 찍어봤다.



불과 2일만에 일어난 쿠데타 그리고 쿠데타의 완료. 현재 태국은 아무일이 없었던 곳 처럼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어제는 숨어있던 차들이 다시 거리 곳곳을 정체시키고 있고 사람들은 굳이 어제 쿠데타를 새삼스레 이야기 하지 않는다. 마치 꿈을 꾼것처럼 말이다.



언론을 통해 접하는 앞으로의 태국은 썩 민주적으로 보인다. 재선과 새로운 권력의 출현이 정치 후진국에서나 나올 수 있는 쿠데타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을까?



덕분에 2일간의 역사탐험에 동참했던 나는 자랑스런 사진들을 찍을 수는 있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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